사도(2014), 조선시대 영조와 사도세자

자산어보(2021), 조선시대 정약전과 흑산도 청년 창대

박열(2017), 일제강점기 독립투사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동주(2015), 일제강점기 윤동주와 송몽규

[문화뉴스 전유진 기자] 한국인에게 제일 인기 많은 시인 ‘윤동주’를 흑백으로 담백하게 담아낸 영화 ‘동주’, 연산조 당시의 궁정의 갈등과 욕망을 표현하면서도 화려한 영상미가 돋보인 영화 ‘왕의 남자’, 그 외에도 ‘사도’, ‘황산벌’ 등 한국 영화에서 굵직하게 한 축을 담당한 이 역사영화들은 모두 이준익 감독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준익 감독은 지난 3월에 개봉한 ‘자산어보’까지 어느새 10개 가까이 시대극 영화를 제작했다. 단순한 역사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역사 속 ‘사람’을 담아내며 많은 감동을 안겨준 이준익 감독의 영화. 이에 작품의 개봉 순이 아닌 영화의 역사사건 순서대로 살피며 이준익 감독의 역사영화의 배경, 관람 포인트, 작품 소개까지 다루었다.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 사도 (2014)

영조의 명령으로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왕세자 사도세자. 많은 한국인들이 알고 있을 역사 이야기이다. 조선왕조 중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로 꼽히는 이 이야기에 이준익 감독이 도전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 만큼, 자칫 진부해질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으나 이준익 감독은 흥행에 성공했다.

간단해 보이는 이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 빼 버리고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만 집중 조명한다. 정조, 외척 등의 이야기는 없다. 다만 왕이자 아버지인 영조와 세자이자 아들인 사도세자만 남았다. 코믹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도 아니다. 담백하게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다가간다. 아들을 죽여 비정하다고 여겨지는 영조를 아들에게 자꾸 기대하게 되는 한 아버지이자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야하는 왕으로 그려내고, 사도세자가 자꾸 영조의 기대에 어긋나게 되며 느꼈을 부담감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닌 세대 간의 극복할 수 없는 갈등의 문제로 조명함으로써 틀어져버린 둘 사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안겨준다. 또 한번 역사 속 ‘사람 이야기’를 드러낸 작품이었다.

영화 ‘사도’는 영조 역의 송강호, 사도세자 역의 유아인, 혜경궁 홍씨의 문근영, 영빈 역의 전혜진이 출연했다.

사진=메가박스중앙 (주)플러스엠 제공
사진=메가박스중앙 (주)플러스엠 제공

◆ 자산어보 (2021)

영화 ‘자산어보’는 2021년 3월 31일에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두번째 흑백영화이다.

정조가 죽은 지 1년, 순조는 어린 나이 11세에 즉위하였다. 정조의 신하였던 이들도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그 중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도 있었다. 영화는 그러한 정약용이 아닌 정약용의 두 형중 한 명인 정약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정약용이 너무 유명하여 잘 보이지 않았던 정약전은 정약용보다 더 뚜렷하게 서학에 관심을 보였고, 뚜렷한 행보를 보였다. 이에 정약용이 신유박해로 인하여 유배를 갈 때, 정약전도 같이 유배를 떠난다. 정약전은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한 흑산도로 떠났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라는 물고기에 대하여 서술한 책을 펴내는데, 이 책의 서문에 등장하는 흑산도의 ‘창대’라는 청년이 영화 ‘자산어보’에서 주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영화 ‘자산어보’는 결국 정약전과 창대가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로 집약된다. 목민심서를 짓는 등 성리학에 집중한 동생 정약용과 달리 물고기를 연구한 정약전과 물고기보다는 성리학을 알고 싶은 창대. 이 둘의 사제관계를 통하여 조선 사회에서의 성리학의 의미와 현실, 불합리성을 엿볼 수 있고 결국 이는 현재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에게 올바른 이념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자산어보’는 정약전 역의 설경구, 창대 역의 변요한, 정약용 역의 류승룡 등이 열연을 펼쳤다.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제공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제공

◆ 박열 (2017)

이준익 감독은 일제강점기도 다른 시선으로 풀어낸다. 선-악으로 구분될 수 없는 현실 속의 독립 운동을 이야기한다.

영화 ‘박열’은 더욱 그러하다. 일본인인 ‘가네코 후미코’의 삶도 다루며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추구한 박열의 가치관을 따라간다. ‘나쁜 일본인’, ‘억울하지만 선량한 조선인’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탈피하고 거칠게 현실을 드러낸다.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강렬하게.

영화 ‘박열’은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퍼진 괴소문으로 조선인이 학살 및 구타를 당한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당시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와 행방불명이 총 40 만 명에 달했다. 일본 내각은 국민의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한국인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이에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하여 조선인을 학살했다.

당시 박열은 일본에서 적극적으로 투쟁 중이었다. 독립투사인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고등학생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폭압에 강한 분노를 느끼고,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인 도쿄로 건너갔다. 또한 박열은 아나키스트로서 탈 국가적이고 탈 민족적이었다. 이렇듯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이념을 따랐던 독립투사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강렬한 삶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같은 일제강점기 작품인 ‘동주’가 서정적이면서도 진한 울림이 있었다면, ‘박열’은 강렬한 향기가 남는 작품이었다.

박열 역에는 이제훈, 후미코 역에는 최희서가 출연하였다.


사진=메가박스중앙 (주)플러스엠 제공
사진=메가박스중앙 (주)플러스엠 제공

◆ 동주 (2015)

한국인에게 제일 사랑받는 시인 ‘윤동주’. 사실 그에게는 한 집에서 태어나고 같이 자란 동갑내기 사촌인 송몽규가 있었다. 사람들은 윤동주만 알지만, 윤동주 못지 않게 송몽규도 신념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했던 적극적이고 불 같은 청년이었다.

영화의 제목은 ‘동주’이나 동주 옆의 몽규를 같이 내보임으로써 단순히 윤동주의 생애를 마냥 찬양하는 것이 아닌 그 시대의 아픔을 드러냈다. 시인을 꿈꾼 윤동주는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송몽규를 가장 가깝게 여기면서도 넘기 힘든 산처럼 여긴다. 같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후 둘의 길은 더욱 극명히 갈리기 시작한다.

목숨을 걸고 적극적으로 독립 운동에 매진하는 몽규와 그런 그를 지켜보며 느끼는 부끄러움과 부러움, 또 시대의 비극을 아파하며 시로 토해내는 동주. 둘의 이야기와 흑백 영화가 만나며 담담하게 깊은 여운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동주’에는 윤동주 역의 강하늘, 송몽규 역의 박정민이 출연했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를 시작으로 하여, 동주 때부터 확실히 다른 역사 영화 장르로의 도전을 꾀한 것 같아 보인다. 코믹성, 대중성도 좋지만 영화 내 짙게 묻어나는 사람 냄새를 담는다. 단순히 ‘국뽕’을 위한 역사가 아니라는 점과 충실한 고증도 역사가들에게 호평을 받는 이유였다.


‘황산벌’에서 시작한 삼국시대부터 ‘동주’로 끝맺음 한 일제강점기까지. 이준익 감독이 다룬 역사 영화를 살펴보았다. 퓨전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이준익 감독은 코믹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그 속의 ‘인간’을 담고자 하는 행보를 보였다. 자유를 갈망하는 왕으로, 왕이기 이전에 그래도 아들의 장래를 기대한 아버지로, 빛나는 친구 옆에서 죄책감과 함께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한 시인을 그렸다.

그의 역사 이야기가 뻔하지 않은 까닭은 알려진 사실 이전의 사람으로서의 솔직한 마음, 갈등을 내보이고자 고민했기 때문 아닐까? 관객은 이미 역사로 답을 다 알고 있지만, 영화 속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욕망을 느끼는 한 사람을 만나고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된다. 앞으로도 이준익 감독이 어떤 역사 속의 인물로 관객들을 새롭게 찾아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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