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같은 세상에서 모글리처럼'

 

                                                                                                                                    천지수 화가 
                                                                                                                                    천지수 화가 

[문화뉴스 천지수 시민기자 ] 아프리카를 잊지 못한다. 가장 찬란했던 내 청춘의 대륙. 그곳에서 느꼈던 감각과 경험들은 언제나 내 가슴 속에 살아 있으며 예술적 영감(靈感)의 보물창고다. 나는 아프리카의 뜨거운 생명력을 닮은 책들을 통해서 아프리카를 다시 기억하려 한다. 그리하여 강인한 생명의 힘을 품은 그림으로 끝내 삶이 성숙되기를 원한다. 첫 번째 책은 <정글북>(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손향숙 옮김 문학동네)이다.

                                                                       정글북
                                                                       

 

맙소사, 인간이야, 인간의 새끼라고. 한번 봐

파더 늑대가 마더 늑대에게 정글의 덤불에서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를 처음 발견하자마자 놀라며 하는 말이다. 1894년에 발표한 <정글북>은 호랑이에게 쫓기다가 정글에서 홀로 발견된 아기가 동물들에게 길러지며 모험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며 세계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아동 고전 문학 소설이다.

늑대 부부는 아이를 자신들의 새끼들과 같이 키우기로 결심하고 개구리 모글리라는 애칭과 이름을 지어준다. 그리고 '정글의 법칙'에 따라 동물들의 총회에서 모글리를 동물의 무리로 인정해 달라고 동의를 구한다. <정글북>에는 수많은 정글의 법칙들이 나온다. 동물들에게 실제로 '정글의 법칙'이 있을까?

나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지냈던 때가 있었다. 동물원의 철장 사이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야생 동물들을 울타리가 없는 정글과 세렝게티 초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대부분 사파리 차량 안에서 동물들을 관찰했으나, 그들은 나를 보고 '철장 안의 인간이 우리를 또 구경하러 왔군'이라고 나를 관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나는 얼룩말 떼에서 매우 인상적인 장면을 봤는데 그것이 '정글의 법칙'임을 확신한다.

수백 마리의 얼룩말 떼가 물을 마시는 장면이다. 마침 건기였는데, 많지 않은 몇 개의 물웅덩이 주변으로 빙 둘러서 10여 마리가 물을 마시고 있고, 다른 얼룩말들은 마시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얼룩말이 무슨 큰 소리를 내니까, 긴 목을 빼고 목을 축이던 얼룩말들이 바로 빠져나오고 그룹을 만들어서 기다리던 다른 얼룩말들이 웅덩이 주변으로 모여서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봤는데, 계속 그런 행동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고 감탄했었다. 인간 사회보다 더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워 보였던 '정글의 법칙'이다.

정글에서 모글리는 동물들에게서 '정글의 법칙'과 '정글의 언어'를 배우며 동물 사회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용감한 소년으로 자란다. 그러나 모글리는 정글을 떠나야 하는 사건으로 인간이 사는 마을에 가게 된다. 마을에서 '늑대소년'으로 발견되고 인간의 언어를 배우며 살아가는 모글리에게 같이 자랐던 늑대 형제가 찾아온다.

"너, 네가 늑대라는 건 안 잊은 거지?…(중략)"

"절대 안 잊어, 너랑, 동굴에서 함께 살던 모두를 사랑해…(중략)”

모글리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동물들과 소통이 자유로우며 그들과 하나의 핏줄이고 형제라고 굳게 믿는다. 인간의 마을에서 결국 쫓겨나가는 모글리는 정글로 다시 돌아가는데, 모글리는 인간 무리와 늑대 무리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정글에서 혼자 사냥하며 살겠다고 선언한다. 거친 야생에서 자라서 용감하고 호기로운 것일까? 나는 모글리의 선언은 그 어떤 상황이라도 살아내고 말겠다는 독립적이며 강한 생명력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아 정체성에 혼란을 주는 운명에 놓여 있는 모글리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모글리는 동물과 인간 그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않아서 사회적으로 소외됐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모글리는 보통의 인간보다 뛰어난 동물적 감각과 힘이 있어서 정글에서도 살 수 있고, 인간의 모습이기에 인간 세상에도 살 수 있는 것이다. 둘 다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강인한 생명력의 본모습이다.

                                                                                    정글의 대화  73x61cm  Acrylic on Canvas  2024
                                                                                    정글의 대화  73x61cm  Acrylic on Canvas  2024

생명들이 꿈틀거리는 아프리카를 떠올리며 정글을 그려본다. 별빛이 하늘을 수놓은 밤의 정글이다. 무성하게 자란 초록의 풀들 사이로 드러나는 두 자아는 달빛 아래에서 정글의 언어를 속삭인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이방인으로 숨 쉬며 또 다른 나의 자아를 수없이 만났던 기억이 난다. 모글리를 도와준 비단구렁이 '카'가 한 말처럼, 그림 속 두 자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는 대자연의 가르침에 대해 서로 배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용감한 마음과 공손한 혀, 그게 있으면 정글을 헤치고 어디라도 갈 수 있지.”

작가는 '세상'이라는 정글에 살아도 외로움을 안고 사는 우리들에게 씩씩한 모글리처럼 정글을 헤치며 살아보라고 하는 것 같다. 생명을 가진 나 자신을 축복하는 것만큼 공손해지고 용감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천지수(화가·서평가 www.jisoo-art.com)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