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 예술가 오혜재] 한국사 기록에 남은 예술가들 중 가장 오래된 사람은 통일신라 시대 화가 솔거(率居)다. 그가 그린 황룡사의 <노송도>(老松圖)를 보고, 새들이 이를 진짜 소나무로 착각해 날아들다가 벽에 부딪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동시에 솔거는 우리 미술사에서 최초의 ‘독학 예술가’였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지만, 미천한 출신의 그는 예술계의 ‘외부자’였다. 하지만 불굴의 노력 끝에 그는 훗날 <노송도>를 비롯해 <분황사관음보살도>, <단군초상> 등의 작품을 남길만큼 당대 최고의 화가로 성장했다.

이후에도 한국 미술사에서 외부자들의 발자취는 계속된다. 한국아르브뤼 대표인 김통원 전 성균관대 교수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적 없는 ‘걸레 스님’ 중광(重光)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화(禪畵)라는 한국의 전통예술 장르에서 독학 예술의 본질을 발견한다. △ 선수행해 깨달은 자의 그림, △ 속기(俗氣), 기교(技巧)는 금물, △ 직시 직관(直視 直觀), △ 임서(臨書), 임화(臨畵), 표절(剽竊)은 절대 금물, △ 무심무아필 창작(無心無我筆 創作), △ 무애자재 초탈한 형태, △ 순진무구한 영아필(嬰兒筆) 등 선화의 7가지 요건이 이러한 본질을 잘 보여준다.

또한 민화 전문가이자 미술사학자인 정병모 전 경주대 교수는 ‘가장 한국적인 예술 장르’로 꼽히는 민화(民畵)를 외부자들의 예술로 본다. 민화는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 습속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다. 한국의 경우 고대를 비롯해 고려 및 조선 시대에서 민화를 발견할 수 있으며, 특히 조선 후기 서민층에서 크게 유행했다. 한국 민화에는 순수함, 소박함, 단순함, 솔직함, 직접성, 무명성, 대중성, 동일 주제의 반복, 실용성, 비창조성, 생활 습속과의 연계성 등의 특성이 잘 나타난다.

개화기를 거쳐 일제 식민지배 시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에는 대학 등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이 출현했고 근대미술의 시대가 도래했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에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예술계에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기실 일제 강점기에는 유학파나 국내파와 별개로 ‘독학파’가 한국 예술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은 가세가 몰락한 탓에 보통학교만 겨우 졸업했지만, 독학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했다. 사상문제로 남한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북한으로 건너간 비운의 화가 조양규(1928-?) 또한 일본 전후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힌다. 전쟁 고아 출신으로 한국전쟁 전후의 생활상을 담아낸 오우암(1938-2023)은 30여년 간 부산의 한 수녀원에서 보일러공과 운전사로 근무한 후, 오십이 되어서야 널빤지에 에나멜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들 일제시대 독학파 이후에는 ‘한국의 고갱’으로 불리는 재미화가 최동열(1951-), 인물화를 통해 사회적 부조리를 조명하는 안창홍(1953-) 등이 독학 예술가로서 한국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최근에도 한국 미술계에서 외부자들의 활동은 지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한 독학 예술가 임이삭(2004-)은 아시아 최초의 아르 브뤼(Art Brut) 및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 전문 미술관인 벗이미술관의 전속작가다. 벗이미술관은 벗이미술제, 벗이미술관 창작 레지던시 스튜디오 활동 등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통해 국내 비주류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인문학협동조합이 기획•발간한 『진격의 독학자들』(2019)에서는 ‘그리기’가 제도 교육의 코스를 밟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정규 과정의 훈련을 통해서 그려진 작업에 비해 독학으로 빚어낸 예술작품이 훨씬 풍부한 조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기성 제도로부터 탈주하거나 소외된 외부자들이 독학으로 수많은 배움의 단서를 풍부하게 획득하는 데 있어, 예술은 충분한 가능성과 개방성을 제공할 수 있는 영역이다.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라는 성경의 한 구절처럼, 미래에도 외부자들은 우리 미술사 속에서 꿋꿋하게 진격하리라 믿는다.     

[필자 소개]

사진=오혜재 독학예술가
사진=오혜재 독학예술가

 

한국의 독학 예술가(self-taught artist)인 오혜재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학사(언론정보학 부전공)와 다문화상호문화 협동과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2014년부터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왔다.

2019년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쇼를 통해 해외에도 작품을 선보이면서, 국내외 다양한 예술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홍콩, 싱가포르, 이탈리아, 독일 등지의 공모전에서 입상한 바 있으며, 2024년에는 영국의 문화예술 분야 글로벌 구인/구직 사이트인 아트잡스(artjobs.com) 주최 ‘2024년 2월 이달의 아티스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직장인이자 저술가이기도 한 오혜재는 2007년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예술서로는 『저는 독학 예술가입니다』(2021), 『독학 예술가의 관점 있는 서가: 아웃사이더 아트를 읽다』(2022), 『아르 브뤼와 아웃사이더 아트: 그렇게 외부자들은 예술가가 되었다』(2024)가 있으며, 예술 비평문과 칼럼도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다년간의 국제 업무 경험과 석사 전공을 토대로, 예술을 통해 다양한 문화 간 이해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문화뉴스 / 오혜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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