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제4기 빙하기 시대에,동시베리아해에 존재했던 빙상 증거 발견

[문화뉴스 엄민용 기자]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가 현실이 돼 가고 있는 지금, 기후변화가 시작되는 출발점이자 그 여파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종착역으로 극지가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8년 남극세종과학기지를 건설하면서 극지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후 북극다산과학기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남극장보고과학기지 등 연구 기반과 거점을 넓혀 가며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이런 가운데 올해는 극지 연구의 중심인 극지연구소가 설립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이에 그동안 우리나라 극지인들이 열정과 땀으로 거둔 어제의 성과들을 되돌아보며 미래의 숙제들을 정리해 본다. <편집자 주>

 

2012년 우리나라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세계 최초로 북극 동시베리아해에 존재했던 제4기 빙상의 흔적을 발견했다. 극지연구소와 독일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 연구팀이 동시베리아해에서 ‘양극해 환경변화 이해 및 활용연구(K-PORT)’의 일환으로 국제 공동탐사를 벌여 거둔 놀라운 성과다. 연구 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Nature Geoscience)>에 게재됐고, 빙하기의 북극해 기후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찾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방대한 지구의 과거를 알아가는 여정

45억 년이 넘는 지구의 역사에는 여러 차례 빙하기가 있었지만, 그 빙하기를 모두 합해도 빙하가 있었던 시간은 5억 년이 채 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빙하기’는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약 26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의 빙하기를 뜻한다. 플라이스토세 동안 빙하기와 간빙기가 여러 차례 반복됐고, 빙하기에는 대규모의 빙상과 빙하가 만들어졌으며, 우리도 잘 아는 매머드나 검치호랑이 같은 동물이 살았다.

동시베리아해 빙상 진출 방향(사진 극지연구소)
동시베리아해 빙상 진출 방향(사진 극지연구소)

인류는 줄곧 빙하와 함께 살아왔다. 약 500만 년 전쯤 등장한 우리 인간의 조상은 혹한의 빙하기와 따뜻한 간빙기, 화산 분화로 인한 소빙하기 등 극단적인 기후변화를 여러 번 겪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플라이스토세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 시작된 간빙기다. 빙하기와 전혀 관련이 없는 시대 같지만, 간빙기는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에 잠시 생겨나는 온난기일 뿐이므로, 사실 우리는 빙하시대의 끝자락을 살아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영화 <투모로우>처럼 새로운 빙하기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기후변화로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또 언젠가 맞이할 새로운 빙하기를 위해서는 이전의 빙하기가 어땠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고작 100년 남짓을 살아갈 뿐인 우리가 수백만 년 전의 빙하기가 어땠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숨겨진 빙하기의 단서를 찾아서

대륙을 광범위하게 덮은 면적 5만㎢ 이상의 큰 빙하를 빙상이라고 한다. 빙상은 태양빛 반사도가 크기 때문에 태양에너지를 많이 반사해 지표를 더 차갑게 만든다. 그렇기에 빙상이 어떻게 분포돼 있었는지를 알아야 빙하기 당시 북극해의 기후를 추정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앞으로의 기후변화 패턴을 추측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제4기 빙하기 당시에 북극해 주변 대륙을 덮고 있던 빙상이 뻗어나가 북극해 가장자리까지 이어지며 바다를 덮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북미와 그린란드 및 러시아 서북부 해안에서 발견됐으나,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 북쪽에서 시작돼 길게 이어지는 해역인 동시베리아해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동안 이곳에 빙상이 존재했었는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기에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지역이었다.

빙하침식 선형구조를 분석한 결과(사진 극지연구소)
빙하침식 선형구조를 분석한 결과(사진 극지연구소)

사실 해저에는 과거 빙하가 어떻게 이동했는지에 대한 많은 정보가 남겨져 있다. 넓은 바닷속 깊이 남아 있다 보니 정보가 남겨진 곳을 찾기가 어려울 뿐이다. 이때 과학자들은 음파탐사를 통해 해저 지층을 파악한다. 전기적 신호를 음파로 바꿔 주는 ‘트랜스듀서’라는 음원 장치로 수중에서 음파를 발생시키고, 해저에 닿은 뒤 반사돼 되돌아오는 음파를 기록해 해저면의 수심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일반적인 측심기는 한 번에 한 점에 대한 수심값밖에 얻지 못해 특정 지역의 해저지형도를 만들려면 배가 수없이 왕복해야 하지만,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는 배 좌우 방향으로 넓은 지역의 수심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다중빔 음향측심기’라는 해저 지형 조사 장비가 있어 조사가 한결 쉬웠다. 남승일 박사와 프랑크 니센 박사는 2008년 독일 쇄빙연구선 플라스턴호를 이용해 해당 지역에서 개략적인 해저지형을 조사한 바 있고, 그때의 탐사자료를 바탕으로 정밀조 사 지역을 선정해 2012년 아라온호로 조사했다.

빙하침식 선형구조를 분석한 결과(사진 극지연구소)
빙하침식 선형구조를 분석한 결과(사진 극지연구소)

바닷속에서 맞춰진 증거의 퍼즐

연구팀은 수심 1200m의 해저에서 빙상이 해저면을 긁으면서 형성된 거대한 규모의 빙하침식 선형구조(mega-scale glacial lineations)를 발견했다. 빙하침식 선형구조는 빙상의 흐름이 남아 있는 길쭉한 지형을 말한다. 대륙에서 형성된 빙상이 북극해 쪽으로 흐르면서 이동할 때 빙상의 바닥면이 중력에 의해 긁혀지는데, 이 과정에서 지표 또는 해저면에 긴 선형의 구조가 평행하게 나타나게 된다. 수만 년 전의 빙상이 남겨둔 기록의 조각인 셈이다. 빙하침식 선형구조의 위치를 지도화하면 과거 빙하기 동안 빙상이 어떻게 분포돼 있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과거 빙상의 흐름을 알아야 오늘날 극지 빙하가 어떤 식으로 움직일 것인지도 알고, 속도와 흐름의 변화 또한 알아낼 수 있다.

빙하침식 선형구조를 분석한 결과, 이곳에서 발견된 빙상은 그동안 북극해에서 발견된 가장 깊은 수심(800∼1000m)보다 더욱 깊은 1200m에 위치해 있고, 수차례에 걸쳐 형성됐음이 확인됐다. 선형구조의 길이와 폭은 각각 20㎞와 10㎞가 넘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과거 빙하기에 북극해 연안 전체가 거대한 빙상으로 둘러싸여 있었음이 세계 최초로 규명된 것이다. 해당 연구는 빙하기의 북극해 기후를 정확하게 모델링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향후 기후변화 패턴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빙하침식 선형구조를 분석한 결과(사진 극지연구소)
빙하침식 선형구조를 분석한 결과(사진 극지연구소)

북극 협력의 새로운 길을 향해

북극은 우리나라와 6000㎞ 이상 떨어져 있지만, 해마다 북극의 기후변화가 한반도에 강력한 겨울 한파를 불러오는 등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 북극이사회의 정식 옵서버가 돼 지난 10년간 기후변화와 환경보호 등 북극의 다양한 현안에 대응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북극에 대한 자원 및 항로 이권 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우리의 발언권을 강화할 수 있는 도구 중 하나가 과학적 성과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이 남긴 연구의 큰 족적은 북극에 대한 영향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문화뉴스 / 엄민용 기자 [email protected]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