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고금리 장기화가 지속되면서 한계기업이 급증하고, 취약계층이 늘어나는 등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에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2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성장세 개선, 환율 변동성 확대 등으로 물가의 상방 리스크가 커졌다”라며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연 3.50%로 동결했다. 지난해 2월부터 11차례 연속 동결 결정이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올해 하반기 중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그 시점이 불확실하다”라며 고금리 장기화를 예고했다. 그만큼 금리 인하 가능성은 멀어진 것 같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빨라야 올 10월 금리 인하에 나서고 인하 횟수도 연내 한두 차례에 그칠 것으로 내다본다.

한국은행은 같은 날 발표한‘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2월 전망치 2.1%에서 2.5%로 0.4%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수출 회복세가 뚜렷해진 데다 소비 흐름도 당초 예상보다 많이 개선됐다는 분석이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 5월 16일 발표한 ‘2024년 상반기 경제전망’에서 지난 2월 전망치 2.2%에서 2.6%로 0.4%포인트 상향 조정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지난 5월 2일 발표한 ‘OECD 경제전망’에서 지난 2월 전망치 2.2%에서 2.6%로 0.4%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도 지난 5월 10일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Aa2)’으로 평가하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2%에서 2.5%로 올려잡았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금융연구원도 2.1%에서 2.5%로 높였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HSBS, 노무라 등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 안팎으로 상향했다. 올해 우리 경기가 기존 예측보다 좋을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이렇듯 우리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는 것은 반가운 소식으로 환영할 일이지만 위험 수위에 이른 부채 리스크에 대해 경각심은 잃지 말아야 한다. 나랏빚이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4월 11일 의결한 ‘2023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채무(중앙·지방정부 채무)는 2022회계연도 결산 대비 59조 4,000억 원이 늘어난 1,126조 7,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였다. 2023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0.4%로 1982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절반을 넘겼다. 이 비율은 2011년 30.3%로 30%를 돌파한 후 2020년 43.6%로 40%대를 넘었고 2022년에는 49.4%로 50%대 턱밑까지 다가서더니 급기야 지난해 50.4%를 기록하며 매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급증하고 있다. 2009년에 348조 원이던 중앙정부 채무가 10년 만인 2019년에 699조 원으로 2배가 됐다. 300조 원이 증가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그러다 2022년에 1,029조 원, 2023년엔 1,035조 2,149억 원으로 늘어났다. 다시 300조 원이 늘어나는 데는 불과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경제 주체인 가계·기업·정부는 빚 줄이기에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하는 이유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집계한 우리나라 국가 총부채(비금융부문 신용)는 지난해 2분기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2,218조 원, 기업부채가 2,703조 원, 정부부채가 1,035조 원으로 총 5,956조 원이다. 국가 총부채는 1년 전보다 4.9% 늘었지만, 우리나라 GDP는 지난해 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올해 정부의 국채 이자 상환액만 27조 원이다. ‘2023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적인 국가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가 87조 원 적자로 집계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9%에 달한다. 지난해 예산안(2.6%)보다 1.3%포인트 높다. 관리재정수지는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 수지를 차감한 것으로 당해연도 재정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된다.

문제는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4%를 넘길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우리 상장사 7곳 중 1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인 이른바‘좀비기업’이다. 특히 고금리가 장기화로 이어지면서 서민들의 가계부채 위기가 심상치 않다. 물론 GDP 대비 가계부채 잔액의 비율은 98.9%로 3년 6개월 만에 다시 100%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지만,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1개월 이상 연체된 개인사업자 대출총액은 지난 1분기 기준 1조 3,560억 원으로 1년 전 9,870억 원보다 37.4%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급전’이 필요할 때 자주 쓰이는 카드론·현금서비스 등 카드사 연체율도 지난해 말 기준 1.63%로 전년 1.21%보다 0.42%포인트 뛰었고, 저축은행 연체율도 3.41%에서 6.55%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햇살론 15’ 등 ‘한계 차주’를 위한 서민금융상품의 연체율(대위변제율)도 지난해 20%대를 웃도는 등 큰 폭의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고금리는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촉진해 장기 성장의 기반을 다지고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 우선 고물가부터 잡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고금리·고물가의 장기화는 내수 회복의 치명적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고통스럽더라도 가계·기업·정부 등 각 경제 주체들이 내핍과 고통 분담의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긴축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괴롭더라도 각 경제 주체들은 좀 더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의 위험 요인이 금융·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유연하게 선제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약한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당연히 기업의 옥석 가리기 작업도 서둘러야만 한다. 자영업자의 퇴로를 열어주는 구조적인 개편도 긴요하다. 폐업 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사전 지원을 통해 위험을 줄이고, 사회안전망 확충을 전제로 과밀화된 경쟁을 줄일 수 있는 구조개혁도 필요하다. KDI가 지난 5월 2일 펴낸 ‘최근 내수 부진의 요인분석 : 금리와 수출을 중심으로’에서 최근 수출 회복에도 불구하고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로 고금리를 지목했다. 일시적 자금난에 처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핀셋 지원’을 하고 서민 정책금융을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민들의 ‘급전’ 창구인데도 불구하고 연 20%의 낮은 수준의 법정 최고금리에 묶여 고사 직전인 대부업이나 제2금융권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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