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강인 ] 아버지!

어제는 6월 셋째 일요일로 미국에서는 '아버지날(Father's Day)' 였습니다. 

우리나라는 1956년 국무회의에서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여 어머니 은혜에 감사하는 날로 지켜왔지만 항간에 아버지에 대한 논란이 일자 1973년 대통령령에 의해 ‘어버이날’로 바꾸어 지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명색이 어버이날이지 국민의 정서는 어머니날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찍이 송강(松江) 정철(鄭澈)은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라고 했는데 어찌하여 이시대 아버지들은 이다지도 홀대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우리나라에는 없는 아버지날을 기억하는 것은 지난날 미국에서 오랜 기간 살다 보니 아버지날에 대한 관습에 익숙해져 있는 탓인가 봅니다.

참, 기억하시죠? 아버지가 천국에 가신 지 벌써 43년이 지났지만 생전에 그토록 사랑하시던  세 살배기 큰 손녀는 어느덧 멋진 청년과 짝을 맺어 슬하에 열여섯 살 난 아들과 열네 살 난 딸을 둔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아버지가 떠나신 후 낳은 둘째 손녀는 올해 마흔 살로 아홉 살, 일곱 살의 두 아들을 기르며 미국 LA에서 모두 화목하게 잘살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 둘째는 올해로 불혹(不惑)의 나이가 됐지만 아직도 철이 안 든 것 같아요. 오늘도 하루종일 뭐가 그리 바빴는지 저녁나절이나 되어 전화로 "아빠~,  Happy  Father's  Day.~~"하고는 끝이네요. 막내 답죠?

저는 오늘 아버지께 드리려고 흰 장미꽃 몇 송이 준비했습니다. 한참 골랐어요. 꽤나 정성을 들여 제일 희고 예쁜 꽃으로 고른 겁니다. 기쁘게 받아주세요.

아버지께 드리는 ‘하얀 장미’ 
아버지께 드리는 ‘하얀 장미’ 

아버지!  

과거 LA에 살던 시절 Father's  Day를 앞두고 라디오를 통해 들었던 한인타운의 어느 유명 양복점 광고 멘트가 기억납니다. 퍽 특이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였습니다.

아버지날에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자연스러운데 굳이 [미안합니다]라는 말까지 광고 문구에 넣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마도 그 양복점 사장님이 저처럼 평소 아버지 속을 어지간히 썩여 드렸나 봅니다.

언젠가 한국에서 60대 중반의 한 남자 교우(敎友)가 세상을 떠나서 장례식(葬禮式)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입관(入棺)에 앞서 시신(屍身)을 염습(殮襲)할 때 30세 안팎의 두 딸이 아버지의 시신을 붙들고 "아버지 미안해!, 아버지 미안해!"를 연발하며 슬피 울던 모습이 너무 인상적 이어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앞서 양복점 사장님의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두 딸의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서로 비슷한 마음은 아닐런지요?

아버지!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기억이지만 저도 아버지께 미안한 마음이 많이 있습니다. 살아계실 때는 잘 몰랐지만, 저도 이제 장성한 딸들의 아버지가 되고, 제 나이도 아버지가 떠나신 나이를 훌쩍 지나고 보니 미안한 마음이 더욱 실감(實感) 됩니다.

그 미안함의 내용은 아버지의 융통성 없는 엄격함에 대한 반항이었습니다. 지나간 여러가지 일들 중 아직도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버지는 당시 베트남전(Vietnam戰)에 선교사로 활동하며 얻은 병으로 누워계셨습니다.

그때는 병명(病名)도 잘 모른 채 여러 가지 합병(合病)으로 앓고 계시던 때였지만, 살아있는 잉어를 통째로 푹 삶아서 즙을 내어 먹으면 즉효라는 말을 듣고 어느 토요일  퇴근 후 남한강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갓 잡았다는 팔뚝보다 더 큰 잉어와, 한약방에 들려 좋다는 약재들을 샀습니다.

집에 돌아와 마당에 장작불을 피우고 몇 시간씩이나 정성껏 삶아 즙을 내어 드렸더니 칭찬은 못 하실망정 "월급 받아 집에 다 들여놓고 매일 교통비 타가는 녀석이 도대체 어디서 돈이 생겨서 이런 비싼 걸 사 왔느냐? 부정한 돈으로 사 온 약은 먹지 않겠다" 하며 외면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융통성 없고 고지식하신 아버지께 한동안 크게 반항하며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은 늦게 귀가해 피곤한 몸으로 잠자리에 막 들었는데 아버지께서 심장통증을 호소하며 곁에서 찬송가를 불러달라고 부탁하셨지만 저는 그게 무슨 효과가 있느냐고 하면서 끝내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 고통으로 잠을 못 이루셨다더군요. 그리곤 얼마 못사시고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늘 마음 아파하며 후회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땐 목회자였던 아버지의 엄격함이 원망스러워 미워도 했었는데 제가 아버지가 되어 돌아보니 그 엄격함은 고스란히 사랑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실 때 남겨준 재물(財物)이란 단 한 푼도 없었지만 그것은 성직자로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고, 물질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제게 심어주신 정신적 유산(遺産)이었습니다. 

그 사랑을, 그 귀한 유산을, 자식들을 키우며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다 체험한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고 있으니 사람같이 미련한 것이 세상에 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미안한 마음으로 노래를 두 곡 띄워 드릴께요. 평소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지만 오늘은 아버지를 주제로 한 옛 팝 음악과 우리 가요를 준비했습니다. 많은 팝송이나 가요 중에서도 한때 각각 1위의 인기를 누렸던 꽤나 괜챦은 곡입니다. 

먼저 ‘에디 피셔 (Eddie Fisher)’의 <오, 나의 아버지 (Oh,  My Papa)>입니다.

금세기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네 번째 남편인 '에디 피셔‘. 저와 비슷한 나이에 가수로, 영화배우로 명성을 날렸던 '에디 피셔'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젊었을 때 참 좋아했던 가수인데 아버지 덕분에 오랜만에 듣게 되어 참 좋습니다.

<Oh! My Papa (오, 나의 아버지)> 

Oh! my papa, to me he was so wonderful
(오! 나의 아버지 저에겐 너무 훌륭하신 분)
Oh! my papa, to me he was so good
(오! 나의 아버지 저에겐 너무 좋으신 분)
No one could be, so gentle and so lovable
(어느 누구도 그처럼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분은 없을거에요)
Oh! my papa, he always understood
(오! 나의 아버지 그분은 늘 이해해 주셨지요)
Gone are the days when he would take me on his knee
(저를 무릅에 앉혀 주시고 가득한 미소로)
And with a smile he'd change my tears to laughter
(저의 울음을 웃음으로 바꾸어 주시던 그런 날들은 가버렸군요)
Oh! my papa, to me he was so wonderful
(오! 나의 아버지 저에겐 너무 훌륭하신분)
Deep in my heart I miss him so today
(마음속 깊히 저는 오늘도 그분을 그리워합니다)
Oh! my papa 
(오! 나의 아버지)  
Oh! my papa
(오! 나의 아버지) 

Eddie Fisher 'Oh! My Papa'

이어서 들으실 곡은 ‘인순이’가 부르는 <아버지>입니다. 
실제로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노래를 들으니 꽤나 감동적입니다.

인순이 '아버지'

 "긴 시간이 지나도 말하지 못했었던....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오늘 아버지 날에 아버지께 새삼 드릴 말씀은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이것뿐 입니다.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문화뉴스 / 강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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