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2024.06.19
캐스팅: 신성록, 박은태, 이지혜, 장은아, 이희정, 신재희 외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좌석: 8열 중앙

 "생명은 창조되어질 수 있는가?"

[문화뉴스 강시언 ]

먼 옛날, 신들의 세계를 탐한 인간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늘에 닿기 위해 높디높은 탑을 쌓았다. 인간의 끝도 없는 욕심만큼이나 거대한 탑이었다. 창조주의 권역을 넘본 인간들의 최후는 참혹했다.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은 무너져 내리고, 탑이 서 있던 자리에는 공허와 혼란만이 가득했다. 우리는 그것을 '바벨탑'이라 부른다. 이는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으려 했던 인간들의 탐욕의 본질이며, 암흑과 혼돈의 신화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19세기 유럽, 다시 바벨탑을 쌓아 올리는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가 쌓은 탑은 단순히 하늘에 닿고자 했던 이전의 탑보다 더 큰 것을 노렸다. 그것은 바로 신이 가진 '생명 창조'의 권능이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인간 생명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과연 생명은 인간의 손에 의해 창조되어질 수 있는가? 생명은 신의 축복인가, 과학의 산물인가?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신의 특권으로 여겨져 왔던 위대한 '생명 창조'의 영역에 과감히 발을 디딘다.  생명이 더 이상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믿는 그가 이뤄야 할 과업은 하나뿐이었다. 스스로 창조주가 되는 것. 생명 창조를 향한 빅터의 신념과 의지는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를 선사할 것인가, 피와 혼돈의 과거를 답습할 것인가. 

나폴레옹 전쟁 당시 '죽지 않는 군인'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던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우연히 신체 접합술의 권위자인 앙리 뒤프레를 만나고, 죽을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해 함께 연구를 진행하려 한다. 앙리는 빅터의 신념에 큰 감명을 받아 전우로서, 친구로서 그의 원대한 생명 창조 실험에 동참한다. 그러나 둘의 실험은 이내 난관에 부딪히고 예상치 못한 사건에까지 휘말리게 된다. 결국 빅터는 혼자서 피조물을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것은 차마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괴물'이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괴물은 자신을 버린 창조주를 찾아오고, 복수를 시작하게 되는데...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폭풍처럼 몰아치는 위대한 생명 창조의 대서사시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폭풍처럼 몰아치는 위대한 생명 창조의 대서사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2014년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올해 10주년을 맞이했다.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의 명작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배경으로 쓰인 탄탄한 스토리, 이성준 작곡가의 풍부한 음악과 왕용범 연출가의 섬세한 터치가 완벽한 삼박자를 이루는 작품이다. 이에 초연 때부터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로 불리며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음은 물론이고, 2017년에는 대극장 창작 뮤지컬 최초 일본 라이선스 수출이라는 쾌거까지 이루며 국제적으로도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유독 10주년을 맞이하는 작품들이 즐비한 2024년 올해, 많은 극이 10주년 기념 공연을 올렸다. 공연 확정 소식이 하나, 둘 들려올 때마다 해당 공연을 기다려 온 수많은 뮤지컬 팬들의 환호가 울려 퍼졌다. 그 많은 작품 속에서도 유난히 뜨거운 환영 열기가 불타올랐던 극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이다. EMK뮤지컬컴퍼니가 제작을 맡은 프랑켄슈타인의 10주년 공연은 명성에 걸맞은 탄탄한 캐스팅을 공개하며 관객들의 기대에 화답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에 유준상, 신성록, 규현, 전동석, 앙리 뒤프레 역에 박은태, 카이, 이해준, 고은성 배우가 이름을 올려 화려한 멀티 캐스팅의 정수를 선보인 이번 공연은 6월 18일부터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무대에 올라 순항 중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다채로운 캐릭터의 향연이다. 주연배우 6인이 전부 1인 2역을 연기하는 독특한 구성도 그렇지만 이들이 연기하는 두 역할이 서로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를 띄고 있다는 점이 더더욱 그렇다. 한 명의 배우가 진지한 고뇌에 사로잡힌 과학자의 모습을 연기하다가 깜찍하고 살벌한 암흑 격투장의 푼수 주인이 되어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신선한 충격에 휩싸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메인 캐릭터들과 더불어 깜짝 놀랄만한 개성으로 중무장한 서브 캐릭터들까지. ‘프랑켄슈타인’에서는 모든 인물들이 더불어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이루듯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런 캐릭터들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것은 그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몫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모든 배역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완전히 다른 두 인물을 연기해야 하고, 인물이 지닌 철학적인 고뇌, 가슴에 새긴 상처, 꿈꾸는 미래 등 깊고 넓은 내면세계를 자연스럽게 녹여내야 한다. 극의 전개가 매우 다이나믹하고 진행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그 템포에 맞춘 감정 조절도 필수다. 또한, 저 밑바닥의 저음부터 극한의 고음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넘버들의 난이도도 아주 만만치 않음은 물론이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폭풍처럼 몰아치는 위대한 생명 창조의 대서사시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폭풍처럼 몰아치는 위대한 생명 창조의 대서사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배우들은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기대 이상, 아니 그 이상의 훌륭한 무대를 꾸며낸다. 빅터 역의 신성록 배우는 풍부한 연기와 넘치는 카리스마로 관중들의 시선을 휘어잡고, 앙리 역의 박은태 배우는 섬세한 감정 표현과 심연을 울리는 노래로 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이지혜 배우의 우아한 면모와 탄탄한 성량, 장은아 배우의 다정하고 포근한 노래와 매력적인 쇼맨십까지 더해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싶은 환상적인 무대가 완성된다. 이희정, 신재희 배우의 맛깔나는 연기와 앙상블 배우들의 멋진 퍼포먼스까지 합하면 그야말로 어벤져스 부럽지 않은 완벽한 조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무대를 보는 내내 감탄을 멈출 길이 없었다. 배우들의 엄청난 활약은 물론이거니와 특수효과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드라마틱한 무대, 한 편의 소설을 보는 듯한 유려한 연출, 때론 물 흐르듯 잔잔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때론 심장을 울리는 강렬한 사운드로 고막을 자극하는 짜릿한 넘버들의 향연까지, 우리 모두가 상상해 온 이상적인 대극장 창작 뮤지컬의 정석이었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무대 구성 면에서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없었지만, 그 점이 1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프랑켄슈타인’만의 아우라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처럼 느껴져 오히려 반가운 느낌이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인터미션 20분을 포함해 거의 3시간에 이르는 시간 동안 공연되는 작품이다. 웬만한 장편영화 러닝타임을 가뿐히 뛰어넘는 긴 시간이지만 보는 내내 단 한 순간도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오히려 1분, 2분 흐르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그만큼 매 장면이 흥미롭고 놀라운 몰입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끼다 보면 어느새 마법처럼 시간이 훌쩍 지나있음을 퍼뜩 깨닫게 될 것이다. 실제로 1부 공연이 끝나고 인터미션 시간이 되자 주변 곳곳에서 ‘벌써 인터미션이야?‘하는 아쉬움의 탄성이 들려왔다. 그만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감상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의 방증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그만큼 강한 흡입력을 가졌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할 것이고 말이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폭풍처럼 몰아치는 위대한 생명 창조의 대서사시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폭풍처럼 몰아치는 위대한 생명 창조의 대서사시

신의 영역을 갈망한 인간,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의 영역을 정복하려 했던 탐험가이자 과학자였다. 그는 평생을 바쳐 인간 생명의 근원과 그 탄생의 기원을 찾고자 온몸을 불살랐다. 아마 그 외에도 수많은 과학자, 연금술사들이 이 본질의 해답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으리라. 그러나 생명의 창조는 19세기를 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완벽히 답을 찾지 못한 인류의 난제다. 철학과 과학, 종교학과 화학, 도덕과 발전의 충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문과 신념이 부딪히며 그 답을 내려 노력했지만 그 끝은 언제나 끝도 없는 혼란이었다. 요즘 말로 문과와 이과의 환장의 콜라보레이션이었던 셈이다. 

작품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명은 창조되어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꼭 어떤 해답을 내놓아야 하는 것일까? 도저히 답을 할 수 없는 문제라면 그저 물음표로 남겨놓고 살아가도 좋지 않을까. 자연히 창조된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고 자연히 돌아가는 죽음을 애도하는 평소대로의 삶처럼 말이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를 저어야 하듯, 섭리를 거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인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생명 창조의 대가가 어떤 절망과 고통으로 이어질 것인지. 그렇기에 생명은 신비하고 고귀하며 두려운 것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생명 창조의 역사를 쓰려 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이자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한 괴물의 이야기이다. 탄생과 죽음, 그사이에 위치한 인류의 강력한 신념과 의지, 고뇌와 절망의 그림자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생명‘의 의미를, ‘생명 창조’의 무게를 담아낸 웰메이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오는 8월 25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14세 이상 관람가이므로 예매 시 주의를 요하며, 문과와 이과 어느 쪽이든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첨언을 남긴다. 

문화뉴스 / 강시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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