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2024.06.12
캐스팅: 최정원, 아이비, 최재림, 김영주 외
장소: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좌석: 11열 중앙

"AND ALL THAT JAZZ"

브로드웨이의 반짝이는 무대, 그 화려한 빛과 환상적인 공연은 모든 뮤지컬 팬들의 영원한 꿈이자 로망일 것이다. 저마다 형형색색의 매력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뽐내는 브로드웨이 공연들의 향연 중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있으니, 바로 '시카고'다. 배우들의 흑백 사진과 붉은 볼드체로 쓰인 제목 'CHICAGO'가 강렬한 조화를 이루는 포스터에서부터 이미 압도적인 존재감이 느껴진다. '우리의 공연엔 어떤 부연 설명도 필요 없다'는 듯한 자신감마저 드러나는 이 이미지에서부터 보이듯, 뮤지컬 '시카고'는 브로드웨이를 넘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대표적인 쇼뮤지컬로 완벽히 자리매김했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시카고', 재즈와 욕망이 폭발하는 끝내주는 브로드웨이 쇼!

재즈와 한 잔의 술, 담배 연기,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넘나드는 몸짓과 날카로운 블랙코미디까지. '시카고'가 보여주는 세계는 무척이나 음울하고 발칙하며 놀라우리만치 잔인하다. 신나게 둥둥 울리던 드럼 소리가 거친 총소리가 되고, 분위기 있게 무대를 휘어잡던 색소폰 소리가 순식간에 장송곡이 되는 무자비한 세계, 그것이 뮤지컬 '시카고'의 진면이다. 얘기만 들으면 어두침침하고 살벌한 느낌인가 싶겠지만 공연 내내 객석에서는 웃음소리가 가시질 않는다. 어둡되 재치 있고 살벌하되 치명적인 매력이 관객들을 완전히 사로잡기 때문이다.

주인공 '록시 하트'는 총으로 살인을 저지른 뒤 수감되고, 교수형을 당할 위기에 놓인다. 록시는 참형을 면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변호사인 '빌리 플린'에게 거금을 주고 변호를 맡긴다. 돈에 눈이 먼 속물 변호사, 빌리가 꾸며낸 록시의 가짜 이야기는 단숨에 그녀를 스타 반열에 올려놓는다. 록시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온 국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게 되고, 그녀의 이름은 신문 1면에 대서특필되며 미국 전역을 뒤흔든다. 하루아침에 미국의 이슈메이커가 된 록시는 이 유명세를 이용해 '진짜' 스타가 되어 화려한 무대에 서는 꿈을 꾸게 되는데... 어둠의 도시 '시카고'를 둘러싼 각자의 탐욕과 열정이 무대 위를 불꽃으로 수놓는다. 

뮤지컬 '시카고'는 1920년대 시카고를 배경으로 하는 블랙코미디 극이다. 이 작품은 살인과 간통, 배신과 같은 인간의 본능적이고 어두운 면모를 파헤치며 사회에 대한 풍자와 인간 욕망의 덧없음을 적나라하게 담아낸다. 등장하는 인물 중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모든 인물은 저마다의 욕망에 충실하며 이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객관적으로 뜯어보면 하나같이 악독한 사람들이지만 '시카고'의 무대를 채우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당당하고, 매력적이며 심지어는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배우들의 능글맞은 연기에 뮤지컬 '시카고'의 풍자적이고 경쾌한 화법이 더해져 '미워할 수 없는' 빌런들의 재기발랄한 무대가 꾸며지는 것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돈과 성공에 집착하고, 이기적인 데다 감사와 용서라곤 모르는 극악무도한 인물들을 완성하는 건 브로드웨이 부럽지 않은 명품 배우들의 향연이다. 특히 이번 시즌은 지난 시즌에 호평받았던 배우들이 다시 한번 무대로 돌아오며 큰 기대를 모은 데 더해 정선아 배우가 벨마 켈리 역으로 새롭게 합류하며 더더욱 이슈가 되었다. 2024 시즌, 이번 시카고 무대에는 벨마 켈리 역에 최정원, 윤공주, 정선아, 록시 하트 역에 아이비, 티파니 영, 민경아, 빌리 플린 역에 박건형, 최재림, 마마 모튼 역에 김영주, 김경선 배우가 올라 환상적인 라인업을 선사한다.  

초연 때부터 벨마 켈리 역을 맡아 호연을 펼쳤던 최정원 배우는 시종 매력적인 애티튜드와 쫀득한 노래로 '시카고'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낸다. 절도 있으면서도 우아한 몸짓과 유혹적인 눈빛은 객석에 앉은 모두를 무대 속으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록시 하트 역의 아이비 배우는 통통 튀는 듯한 발랄함과 사랑스러운 연기로 극의 분위기를 재치 있게 이끌어간다. 특히 다채롭고 드라마틱한 표정을 자유자재로 선보이며 작품에 활기를 더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빌리 플린 역의 최재림 배우는 재즈 장르에도 완벽히 녹아들어 가는 탄탄한 가창력과 여유 있는 연기로 작품에 적절한 무게감을 부여한다. 또한, 'We both reached for the gun' 넘버에서는 놀라운 복화술을 선보이며 눈길을 사로잡는 관전 포인트를 선사한다. 마마 모튼 역의 김영주 배우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풍부한 성량으로 죄수들의 마마, 그 거대한 존재감을 여지없이 발산한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시카고', 재즈와 욕망이 폭발하는 끝내주는 브로드웨이 쇼!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최정상급 배우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매력적인 공연을 만나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무대를 만들어낸다. 공연 당시 넘버 하나하나가 끝날 때마다 열띤 환호가 쏟아졌으며, 인터미션 시간과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도 끊임없는 찬사가 들려왔다. 모든 관객이 열광할 정도로 뜨겁고 짜릿한 공연이었고, 극장 안은 배우들의 열정과 관객들의 열광으로 가득 차 곧 폭발이라도 할 듯이 불타올랐다. 매 넘버가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애써 꾹꾹 눌러야 할 정도로 공연 내내 들떠있었다. 이렇게 객석과 무대가 하나 됨을 느낀 공연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뮤지컬에서는 흔하지 않은 진한 재즈 선율도 '시카고'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규모가 큰 뮤지컬은 대부분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이 돋보이는 클래시컬한 넘버로 구성된다. 반면 '시카고'는 재즈가 지닌 농도 짙은 끈적함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벨마의 우아한 등장과 함께 무대에 'All That Jazz'가 흘러나오는 순간, 무언가에 홀린 듯 작품 속으로 완전히 빠져드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 재즈 음악을 즐기는 편이 아님에도 뮤지컬 '시카고'가 선사하는 재즈는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재즈의 재발견'같은 느낌이었달까. 공연을 보면서 재즈가 이토록 매력적인 장르였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느꼈다. 

'재즈'라는 장르가 가진 섹시하고 유혹적인 느낌을 200% 살린 뮤지컬 '시카고'의 넘버는 작품 특유의 발랄한 음울함과 완벽한 합을 이룬다. 여기에 재즈 밴드의 풍부하고 깊은 사운드가 어우러져 그 매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개성 넘치는 악기들이 만나 서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조화는 영화 '라라랜드'에 나온 한 대사를 연상시킨다. "재즈에는 충돌도 있고, 타협도 있으며 매시간, 매일 밤 새로워져요." 뮤지컬 '시카고'의 음악에는 재즈의 치열함이 있다. 그리고 그 열정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온도는 데일 듯 뜨겁다. 후끈히 달아오르는 '시카고'의 무대는 재즈의 열정으로 가득하다. 장담하건대, 이 작품을 보고 나면 고막을 끈적히 싸고 도는 재즈의 매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을 넘어,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뮤지컬 작품들을 보면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가 있구나'를 여실히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뮤지컬 '시카고' 역시 그렇다. 블랙코미디 장르가 가진 재치와 유머, 특유의 경쾌함과 박자감을 살린 독특한 퍼포먼스,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할 강렬한 재즈의 유혹부터 매력적인 배우들의 향연까지. 이 완벽한 조화의 결과물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장면의 전환이 빠르고 다이나믹한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작품이니만큼 평소 뮤지컬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충분히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화려한 조명과 번뜩이는 총구의 불빛이 공존하는 시카고의 밤, 그 속에서 각자의 야망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치열한 이야기. 뮤지컬 '시카고'는 어두운 사회의 이면을 조명하는 동시에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다. 욕망에 가득 찬 이들이 이 잔인한 도시를 살아가는 법이 궁금하다면 '시카고'가 선사하는 짜릿한 관능에 빠져들어 보기를 권한다. 한편, 뮤지컬 '시카고'는 오는 9월 29일까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해당 공연은 14세 이상 관람가이니 예매 시 유의를 요한다. 

문화뉴스 / 강시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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