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2024.05.29
캐스팅: 양준모, 김도형, 유리아, 김진수, 조휘, 김도현 외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좌석: C열 중앙

"대한의 이름을 지키리라, 대한의 미래를 밝히리라"

초여름의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광화문 광장은 사람들의 들뜬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뮤지컬 '영웅'의 개막 공연 관람을 앞두고 극장 앞 광장 터에 옹기종기 모인 관객들은 만면에 미소를 띈 채로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푸르고 드높은 하늘과 귓가를 간지럽히는 살랑바람... 여느 날과 같은 평범한 오후였다. 오늘날 우리의 평범한 하루는 이토록 편안하고 자유롭다. 그러나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에 바람의 손길을 느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일제강점기, 모든 국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앗아간 시대의 폭풍은 잔혹하고 무자비했다. 

누군가는 싸워야만 했다. 나고 자란 고향이자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고국 땅을 지키기 위해, 마음껏 웃고 떠들며 거리를 거닐 수 있는 자유를 되찾기 위해. 힘없는 나라의 백성들은 빼앗긴 우리의 것을 다시 찾아 줄 '영웅'의 등장을 간절히 기다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민족의 간절한 염원은 빛을 발했다. 기다리던 영웅들의 등장이었다.  평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 땅이 찬란한 희망의 땅으로 변하기까지 기꺼이 맞서 싸운 영웅들이 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이들의 위대한 투쟁이 오늘, 무대 위에서 불타오른다. 

일제의 잔인한 통제와 억압 속에 꽁꽁 얼어붙은 조선의 1909년, 안중근과 독립군들은 독립의 결의를 다진다. 안중근을 중심으로 명성황후의 마지막 궁녀였던 설희를 비롯해 독립을 위해 싸우려는 많은 이들이 모여들고,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가는데... 일본군의 삼엄한 경비를 피해 가며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던 이들은 수많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독립을 향한 의지를 불태운다. 한편,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으로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안중근은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하얼빈으로 향한다. 결전의 1909년 10월 26일, 그날의 찢어질 듯한 총성이 하얼빈역에 강렬히 울려 퍼진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과거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을 기억하고 가슴에 새겨야만 과오의 반복을 경계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명확히 바라볼 수 있으리라는 가르침을 담은 말일 것이다. 국가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다해야 할 의무이며, 숨쉬듯 당연한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순간 역사를 잊고 살아간다. 과거와는 달리 주어진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자유'가 현재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당장 눈앞에 놓인 자유를 마음껏 즐길 궁리만 할 뿐 이 자유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희생 끝에 탄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오늘 하루에 마땅히 감사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뮤지컬 '영웅'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영웅'은 단순한 뮤지컬 한 편이 아니라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문화적 매개체이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의 다리로써 지금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뜻깊은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영웅', 우리들의 영웅, 당신을 기억합니다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삶과 독립 정신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의 제안으로 구상을 시작한 '영웅'은 20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초연을 올렸다. 역사적 소재를 뮤지컬이라는 장르 안에 조화롭게 녹여낸 '영웅'은 올해 15주년을 맞아 10번째 공연을 올리기까지 수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무려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뉴욕과 하얼빈에서 열린 해외 공연까지 성공적으로 올리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웅'이 만들어온 역사를 볼 때, 이 작품을 한국을 대표하는 단 하나의 뮤지컬로 꼽는다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뮤지컬 '영웅'에는 아픈 역사를 지닌 우리 민족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 작품을 다 보고 나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폭풍 같은 감정이 가득히 밀려온다. 가슴이 벅차오르며 나 자신이 이 자랑스러운 영웅들의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자랑스러워지는 것이다. 이 땅에는 아직도 그들이 간절히 바랐던 대한독립의 꿈이 살아 숨 쉬고 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에조차 그 열망이 스며있다. 우리들의 선조이자 민족의 영웅들이 흘렸던 피와 땀은 아무리 긴 세월이 흐른다 해도 여기, 이곳에 남아 민족의 얼을 지킬 것이다. 고귀한 희생으로 이 땅의 자유를 지켜낸 영웅들의 우렁찬 함성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웅'의 이야기에는 역사적 사실과 픽션이 섞여 있다. 실제 기록에 남아있는 인물들도 있지만 창작된 캐릭터도 있으며, 역사적 상상력에 기초해 쓰인 부분들도 존재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설희'라는 인물이 대표적인 창작의 결과물이다. 이토 히로부미와 동행하며 독립운동가이자 정보원으로 활동했던 그녀의 존재는 허구이다. 이렇듯 '영웅'의 이야기는 팩트와 픽션을 적절히 혼합하여 다양한 서사구조를 구성한다. 인물과 드라마를 추가함으로써 더욱 풍성해진 내용은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이야기의 진행에 극적인 효과를 가미해 흥미를 더한다. 

'영웅'의 무대는 우아하면서도 심플한 디자인으로 설계되어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간소한 배경에 앙상블 배우들의 움직임, 단체 군무 등의 웅장한 요소들이 가미되어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넓은 무대 안에서도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은 조명과 무대장치 등으로 영리하게 부각시켜 시선이 집중되도록 한 점이 인상적이다. 절제미가 돋보이는 무대의 구성은 마치 고려청자가 그리는 부드러운 곡선처럼 유려하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영웅', 우리들의 영웅, 당신을 기억합니다

15주년 기념 공연을 맞아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과 오랫동안 '영웅'의 자리를 지켜온 배우들의 활약 또한 뛰어나다. 특히 양준모 배우는 첫 등장부터 굳게 결의에 찬 표정과 단단한 비장미로 주인공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물론이거니와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묵직한 목소리까지. 양준모 배우가 무대에서 재현한 안중근 의사의 굳은 독립의지를 고스란히 느끼며 무한한 감동을 느꼈다. 다른 모든 배우의 활약 역시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났기에 '영웅'이 전하는 드라마에 깊게 빠져들 수 있었다. 

관람 당일, 세종문화회관 앞은 단체 관람을 온 많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지켜 입장을 기다리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문화예술을 통한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겼다. 이 학생들은 '영웅'을 통해 우리나라를 지켜낸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보고 배울 것이다. 오늘 이 무대의 울림을, 노랫소리를, 느껴지는 감동을 그대로 마음에 담을 것이다. 뮤지컬 '영웅'을 보며 새긴 투쟁의 기록은 교과서에 나온 사진 서너장, 글 몇 바닥으로 읽어낸 독립운동의 역사보다 몇십 배, 몇백 배는 오래, 깊게 기억될 것이다. 독립 영웅들의 모습을 단순히 암기해야 할 지식이 아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로 기억할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이들이 만들어 나갈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됐다.

대한의 아이들이 대한의 이름으로 자라날 수 있는 오늘, 푸르른 들판과 하늘을 수놓은 구름을 보며 이 땅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오늘. 우리의 오늘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영웅들의 위대한 여정 끝에 만들어졌다. 뮤지컬 '영웅'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모든 독립 영웅의 발자취를 담은 작품이다. 민족의 얼과 한으로 그린 독립의 역사를 볼 수 있는, 한 편의 뮤지컬 이상의 가치를 지닌 극이니만큼 관람 후 특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뮤지컬 '영웅'의 서울 공연은 오는 8월 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되며, 이후 지방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맑은 여름, 우리의 영웅들이 지켜낸 아름다운 광화문의 정취를 느끼며 작품을 관람해 보기를 추천한다. 

 

문화뉴스 / 강시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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