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2024.05.10
캐스팅: KoN, 김경수, 기세중, 이준우, 성민재 외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좌석: J열 우측

“그의 재능은 악마의 저주인가,신의 축복인가?”

평생을 사랑받고 비난받았던 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 바이올린 하나로 모두를 현혹시킬 수 있는 ‘악마의 재능’을 가졌던 그는 당대 최고의 위대한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파가니니의 이름 앞에 따라붙은 ’악마‘라는 수식어는 그의 삶을 지독하게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다. 

대중들은 그의 연주에 감탄을 마지않는 동시에 사람을 홀리는 악마라며 그를 매도했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꼬리표는 평생동안 파가니니를 따라다녔다. 이런 수많은 구설에도 파가니니는 음악을 멈추지 않았고, 현재까지 명작으로 칭송받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영혼은 죽은 후에도 쉴 곳 없이 떠도는 처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지상의 신성한 땅에 악마의 영혼이 머무르기를 원치 않았고, 파가니니의 육체는 고향 땅에 묻히지도 못한 채 긴 세월을 헤매야 했다. 고통과 환희의 합주로 채워진 그의 파란만장한 삶, 주어진 매분 매초를 음악으로 살았던 음악가 파가니니의 인생이 쓸쓸한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무대 위에 펼쳐진다.

1836년 파리, 전 유럽에 이름을 떨치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있었다. 파가니니의 동업자 콜랭은 그와의 카지노 사업 실패로 막대한 손해를 입고, 이단 심문관 루치오 신부와 손을 잡아 파가니니가 악마라는 소문을 퍼트린다. 결국 파가니니는 죽음을 맞이하고도 교회에 묻히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그의 아들 아킬레는 아버지의 마지막 명예를 지키기 위해 종교 재판장에 서게 되는데… 과연 파가니니의 영혼은 신의 가호 아래 평안한 안식을 찾을 수 있을까? 

당대에 이루어졌던 마녀사냥은 이성과 논리라는 것이 완전히 결부된, 그야말로 광기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마녀라 손가락질하기 시작하면 그대로 마녀라는 낙인이 찍혀버리는 식이었으니 말이다. 파가니니 또한 이런 풍조의 피해자였다. 그의 연주가 지나치게 아름답다는 이유로, 그의 공연을 보면 누구나 푹 빠져든다는 이유로 그는 악마가 되었다. 이런 시대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악마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인간의 악마성에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평범한 시민들 사이 어딘가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악마의 존재, 그 막연한 두려움은 파가니니의 재능을 악마가 내린 저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공포에 대한 불안은 거짓된 실체를 빚어낸다. 마녀사냥의 불행한 희생양이 된 그는 세상의 비난에도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었을까, 애정 어린 집착이었을까. 파가니니의 생각을 미처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그는 악마가 아닌 인간이었다는 것.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파가니니’, 활과 현의 공명이 선사하는 예술의 극치

음악을 향한 파가니니의 맹목적인 사랑은 작품 군데군데서 드러난다. 그는 무대와 연주를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음악과 함께할 때면 그 자체가 음악이 되어버린 것처럼 깊이 빠져들었고,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음악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음악은 파가니니의 전부였고, 그의 삶을 지탱하는 유일무이한 기둥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바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어놓고서라도 삶의 이유인 음악을 지켜내려 했다. 누구보다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했던 그의 순수한 모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만큼 깊은 잔상을 남긴다.

뮤지컬 ‘파가니니’에서 그의 열정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환상적인 바이올린 연주일 것이다. KoN 배우의 연주는 차마 글 몇 자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가히 놀랍고 감동적이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이토록 다채로운 소리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오늘에 와서야 깨달았다. 그의 연주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음악이 빚어낸 고통과 환희가 가득 담기다 못해 넘쳐 흘렀다. 비운의 천재,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이 쉽지 않은 수식어들을 한순간에 완벽히 이해시키는 매혹적인 무대였다. 

‘파가니니’는 음악가 파가니니가 자주 연주했던 ‘바이올린’을 중심 소재로 삼고 있지만, 작품을 구성하는 음악에는 의외로 락 사운드가 비중 있게 나타난다. 파가니니의 삶을 둘러싼 온갖 암흑의 음모와 신경적인 불안, 한계를 향해 치닫는 격렬한 어둠과 같은 배경들이 심장을 쿵, 쿵 울려오는 강렬한 락 음악과 만나 새로운 지옥의 모습을 선사한다. 이외에도 클래식, 오페라, 발라드와 같은 다양한 음악들이 함께 어우러져 음악의 진면목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파가니니의 삶은 어둠이었다. 사랑보다는 채찍이 익숙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야 했고, 주변에 기댈 곳 하나 없는 외로운 시간을 버텨야 했다. 하나뿐인 안식처였던 음악은 그를 악마로 만들어 지옥으로 빠뜨렸다. 암흑과 같았던 그의 삶은 흑색의 이미지로 무대에 나타난다. 깜깜한 밤이 내려앉은 듯한 무대는 어둡게 가라앉아 가던 파가니니의 인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간결하면서도 진중한 느낌을 주는 무대 디자인은 임팩트 있는 음악, 강렬한 조명과 조화롭게 융화되어 완벽한 밸런스를 이룬다.

배우들의 역량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놀랍다. KoN 배우의 바이올린 연주는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듣는 내내 소름이 끼칠 정도로 경이롭다. 관람 내내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려는 탄성을 여러 차례 꾹 삼켜야 했을 만큼 엄청난 압도감이었다. 뮤지컬 무대에서 이런 훌륭한 연주를 듣게 된 것 자체만으로도 감탄을 마지않을 수 없었다. 또한, 김경수 배우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와 분위기, 기세중 배우의 폭발적인 가창력과 이준우, 성민재 배우의 탄탄하고 안정적인 연기가 이어지며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인다. 

앙상블 배우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카지노 파가니니’와 ’파가니니!‘ 등 높은 난도의 단체 넘버들을 역동적이고 박진감 넘치게 표현해냄은 물론이고, 안무와 노래의 합도 뛰어나다. 어린 파가니니, 마녀로 몰린 노파 등 배우 개개인의 임팩트 또한 상당해 작품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 관람 시 앙상블 배우들의 연기에 관심을 기울이면 색다른 느낌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음악, 음악이 만들어내는 황홀한 선율을 탐했던 파가니니의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음악으로 인해 절망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음악이 없었다면 그의 절망도, 희망도, 기쁨도, 환희도 없었을 것이다. 파가니니의 인생은 온통 음악이었다. 그가 수많은 음표들로 쌓아 올린 견고한 성은 악마의 요새이기도, 신의 성전이기도 했으리라.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파가니니’, 활과 현의 공명이 선사하는 예술의 극치

뮤지컬 ‘파가니니’는 음악에 모든 걸 내던졌던 뜨거운 한 영혼의 이야기이다.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만들어 낸 세기의 무대를 만나고 싶다면 오는 6월 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파가니니’의 여정에 함께해 보기를 바란다. 극장이 국립중앙박물관 내부 깊이 위치해 있으니 관람시 필히 시간 여유를 갖기를 권한다. 또한, 극장 주변으로는 눈부시게 반짝였던 파가니니의 재능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드넓게 펼쳐지니 여름날 산책을 곁들여 극장에 방문하는 것도 추천한다. 

 

[문화뉴스 강시언 ]

문화뉴스 / 강시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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